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 옆에서 같이 활동했던 허영자 회장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안타까운 심정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었다. 최근에는 행사에서 허 회장님이 보이지 않아서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이제 연세가 높으셔서 집에서 요양 중이시라고 했었다.
허영자 회장은 2025년 2월 26일에 별세하였는데 향년 83세이시고 특별한 지병은 없었다고 한다. 일주일 전 갑자기 쓰러지셔서 서면 온병원 응급실로 옮겼는데 그때만 해도 정신은 말짱하셔서 형제들과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허영자 회장 빈소. ⓒ이복남
마지막 가시는 길 배웅이라도 해야겠기에 온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에 조문을 하고 가방에서 조의금 봉투를 꺼냈는데 상주들이 손사래를 쳤다. 마지막 가시는 길 빚지면 안 될 것 같아서 조의금은 안 받기로 했단다.
허영자 회장은 여섯 남매의 맏이였고 결혼도 안 하셨기에 남은 형제들이 상주를 했다. 아래 동생들이 필자를 자리로 안내를 하고 음식을 내 왔다.
평소에 허 회장님에게 물어보지 못했는데 예전에는 무엇을 했으며, 평생을 봉사만 하셨는데 뭘 먹고살았을까? 예전에 어머니가 쌀집을 하셨고 큰언니(허영자)도 분식집을 해서 먹고사는 데는 걱정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봉사가 직업이 되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장애인복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대였는데 80년대 후반부터 여러 가지 사업이나 행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언제나 함께 한 사람이 허영자 회장이었다.
부산장애인총연합회에서 주최하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행사는 물론이고, 한바다축제 등 여러 가지 행사가 잘 진행되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서병수 시장과 허영자 회장. ⓒ부산장애인총연합회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에서 매 년 실시하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장애인 국토 대행진이 제주도 한라산, 백두산, 그리고 해병대 병영체험까지 2박 3일 동안 장애인들과 숙식을 함께 하면서 자원봉사를 했다. 특히 "한라에서 백두까지"에서 자원봉사뿐 아니라 ‘한백회’라는 모임에서 금일봉까지 후원했다.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에서 허영자 회장의 공로를 인정하여 2018년 제3회 장애인가족사랑 행복나눔대회 시상식에서 허영자 회장이 자모상을 수상했었다.
허영자 회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나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등 어디든지 장애인이 있는 곳에는 자원봉사를 했다. 장애인들은 허영자 회장이 어디 소속인지 그런 것은 알 필요도 없었지만.
제3회 장애인 가족사랑 행복나눔 시상식. ⓒ부산장애인총연합회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허영자 회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창립 이전인 1978년 부산진구 적십자 봉사원으로 가입하면서 해운대 난민보호소에서 봉사를 했다고 한다. 이미 고인이 된 터라 더이상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월남난민보호소(베트남난민보호소)는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공화국이 패망한 이후부터 베트남을 탈출한 베트남 남부출신 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대한민국 부산직할시에 설치되었던 난민보호소이다. 보호소에 남아있던 150여 명의 잔류 난민의 이민을 뉴질랜드 정부가 수락하면서 1993년 1월 29일 난민환송식과 현판 하강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베트남 난민보호소에 초창기 때에는 대부분이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탈출한 정치난민들이었는데, 나중에는 보트피플이라는 경제적 난민들이었다고 한다. 허영자 회장은 난민보호소에서 난민들을 돌보면서 식사 등 급식 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태풍 산사태 열차사고 등의 재해구호 현장에 달려가 재해 복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피해 가족 및 현장 활동 인력들을 위한 급식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허영자 회장 별세 소식을 듣고 기사를 한 줄 쓸까 싶어서 부산장애인총연합회에 사진을 부탁했더니 자원봉사를 하신 분이라 사진이 없다고 했다. 겨우 찾은 사진이 오래전 서병수 부산 시장을 찍은 사진에 허영자 회장이 나와 있었다.
무료급식소에서 생선을 다듬는 허영자 회장. ⓒ이복남
생각해 보니 예전에 필자가 허영자 회장을 인터뷰한 기억이 났다. 허영자 회장이 1993년 범천동에 문을 연 무료급식소에 일주일에 한 상자씩 생선을 대 주던 장애인이 있었다. 그때 생선 장사를 하던 장애인 강 모씨가 우연히 허영자 회장을 만나서 허영자 회장이 무료급식소를 그만 둘때까지 20여 년 동안 생선을 대 주었다고 했다.
허영자 회장은 범천동 산꼭대기에 무료급식소를 열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하루에 7~80명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생선이나 채소 등 반찬거리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허영자 회장을 모시고 아침마다 시장을 봐 주는 장애인 이 모씨가 있었고 적십자의 다른 봉사자들이 교대로 와서 반찬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등 서빙을 했다.
그때 허영자 회장이 필자에게도 후원을 하라면서 후원 신청서를 내밀었다. 필자가 후원할 돈이 없다고 하자 한 달에 천원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적십자 천원 후원이 지금까지 몇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서면에서 마당집을 운영하던 윤경숙 사장이 1년에 한 번씩 연말이 되면 허영자 회장의 무료급식소에 점심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은 마당집에 초대했었다.
윤경숙 회장은 2009년 12월 28일 오전 11시 할아버지 할머니 80여분을 마당집에 모시고 불고기 전골로 점심식사를 대접하면서 떡과 과일을 내놓고 용돈 5천 원이 든 돈 봉투를 일일이 어르신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허영자 회장은 이 자리에 필자도 초대 했기에 그 당시 상황을 에이블뉴스에 기사로 쓰기도 했다. (에이블뉴스, 2009.12.30. “봉사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
마당집에서 허영자 회장과 윤경숙 사장. ⓒ이복남
“내 칠십 평생에 이런 집에, 이런 음식은 처음 먹어 봅니다.” 처음 오신 박00 할머니는 돈 봉투를 받아 들고 윤사장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고급식당인 마당집도 처음이고 불고기전골도 처음인데 거기다가 돈 봉투까지 주시다니, 감격에 젖은 어르신들은 목이 메어 수저를 들지 못했다. 그때 쓴 기사의 일부인데 마당집에는 연말이면 허영자 회장을 통해서 어르신들은 초대했다지만 그 후 필자는 가 보지 못했다.
그 후에도 허영자 회장은 봉사 4만 시간으로 봉사자 표창을 받기도 했고, 2021년 대한적십자사 정부포상 시상식에서 어려운 이웃과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고 한다.
2021년 허영자 대통령 표창.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이렇게 별세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다. 평생을 결혼도 하지 않고 장애인 등 남을 위해 봉사를 해 오신 분이다.
“자원봉사활동”이란 개인 또는 단체가 지역사회ㆍ국가 및 인류사회를 위하여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허영자 회장은 적십자 운동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수행하는 노란 조끼의 천사로서 장애인을 비롯하여 자활과 구호가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함께 했던 우리들의 영원한 자원봉사자였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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